나님은 대단하군! 성밖숲에서 찍은 사진이 이거 한장이라니 ;ㅁ;


대구에 살던 시절 성밖숲은 내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내가 식물을 좋아하다보니 군락지들을 좋아하는데, 성밖숲은 왕버들과 맥문동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꼭 한번쯤 가보고 싶었었는데, 웃기게도 처음 가게 되었던 계기는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성밖숲으로 흘러들어가게 된 썰]


그 날은 친구인가 친구 동생인가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이다보니 내 육신은 풀셋팅 되어있었다. 웨이브를 넣은 머리, 정장풍 옷, 예쁜 가방을 들고 예쁜 구두까지! 쓰다보니 친구 결혼식이었던 것 같다. 여자사람친구들 중에서 첫 결혼이어서 왠지 나왔는데 엄청 싱숭생숭하고 심란한 기분이 들어서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걷다보니 설빙인가가 나와서 혼자 빙수를 와구와구 먹었다. (결혼식 뷔페는 안 먹는 편) 그래도 기분이 안 풀려서 아마 나와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다가 처음 오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250번 버스가 왔고 나는 그 버스가 그렇게 세상 멀리 가는 줄 몰랐다.


원래도 여행을 다닐 때 가끔은 주사위를 돌려서 행선지를 결정한다거나 서프라이즈, 뜻밖의 계획 변경 같은 걸 즐기는 편이라 어딘지 확인도 안하고 덥석 타고 룰루랄라 갔다. 아무리 그래도 대구에서 버스를 탔는데 시도경계선을 넘어갈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좋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는 걸 부정하진 못하겠음) 그리고 도착했을 때는 약간 해가 질 무렵, 석양과 이천(옆에 흐르는 천 이름), 그리고 왕버들. 정말 장관이었다.


사람도 물건도 장소도, 첫인상이 이래서 참 중요하다. 그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코 끝에 스치는 냄새,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 내 주변의 공기.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그 장소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그리고 성밖숲은 내게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되었다. 


-썰 끝-


그래서 푸딩이(현재 기동력 담당) 없던 시절에도 250번 타고 뻔질나게 다녔었다. 물론 푸딩이를 데려오고 나서는 더 자주 갔던 것 같다. 오히려 너무 자주 가서 사진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은 소위 말하는 나의 힐링 플레이스였기 때문에, 가서 버들 사이의 벤치에 앉아 이천을 보면서 멍 때리다 오는 게 일이었다. 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이라던지, 가끔 수면에 원형의 파동을 일으키는 물고기들을 앉아서 가만가만 쳐다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요즘 같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삶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잠시만 방심을 해도 어떤 생각들이 뇌를 비집고 들어오기 일쑤이다. 뜬금없이 일요일 오전에 그 시간이, 앉아있던 그 벤치가 그리워져서 끄적여본다.


추가


1. 성주읍 경산리에 있는 이 숲은 천연기념물 403호이다. 왕버들로만 이루어져있고 이 왕버들들의 수령은 대략 300년에서 500년 정도. 59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하나하나 번호가 매겨져있다. 소듕한 왕버들...☆ 예전엔 성주 읍성 서문 밖에 있어서 성밖숲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이야 성이 없으니 이름만 남은 것 같다. 특히 성주의 성밖숲은 비보림으로 조성된 녀석인데 비보림은 마을의 지형적 결함을 보완하고 길복을 가꾸기 위해서 조성한 인공 숲이다. 딱히 풍수지리를 엄청나게 믿는 건 아니지만,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볼 수 있으니 그저 좋다. 


2. 상주 솔숲 맥문동에 비하면 여기는 완전 애기(?)라던데 난 둘 다 아직 못 가봤다. (시무룩) 성밖숲도 그렇게 자주 갔는데 하필 맥문동이 폈을 때 한번도 못 가본 게 너무 억울하다. 대구에 있을 때 갔었어야 했는데... 둘 다 너무 가보고 싶다. 안그래도 요즘 성주 맥문동은 시즌 시작이라던데 ㅠ_ㅠ (상주는 아직이라는 것 같음!) 안타깝다.


Posted by 김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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