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1431-1492/세종13-성종23)은 조선초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본관은 선산, 자는 효관, 계온, 호는 점필재, 시호는 문충이다. 1431년 밀양 대동리(한골)에서 태어났다. 1457년(세조3) 유명한 '조의제문'을 짓고, 1459년(세조5)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료생활을 시작하였다.

1470(성종 원년) 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문하에 학도가 운집하여, 김굉필, 정여창 등이 수학하였다. 그 후 10년간 문한, 사관, 경연관, 전주 등의 맑고 깨끗한 중요 직책을 계속 맡았다.

1489년(성종20) 밀양으로 낙향하여, 학문과 후학 지도에 전념하다가 1492(성종23) 8월 19일에 돌아가셨다.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되었다가 1507년(중종2)에 중종반정으로 벼슬과 시호등이 복권되었다.

1689년(숙종15) 영의정에 증직되고, 1708년(숙종34) '文簡'에서 '文忠'으로 시호가 고쳐졌다.

밀양의 禮林서원을 비롯하여 구미의 金烏, 함양의 柏淵, 김천의 景濂·德林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개실마을 점필재 종택★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는 선산 김씨들이 모여사는 한옥마을 집성촌이 있다. 500여년전 무오사화 때 화를 면한 김종직의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지금까지 18대째 종가가 대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종택 뒤쪽에 사당이 있으며, 2011년 교지 등 고문서 79점이 보물 제1725호로 지정되었다. 점필재 유물과 유품의 일부는 대가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조의제문★

김종직이 1457(세조3) 10월에 쓴 글이다. 항우에게 죽은 초나라 의제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으로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의제에 비유하여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것이다. 후에 제자인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을 때 이 글을 사초에 적어 넣었는데, 이것이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었다.


★무오사화★

1498년(연산군4) 7월 김일손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이다. 성종대 이후 김종직과 그의 제자들인 사람파가 중앙에 등용되면서 훈구파와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종실록>의 편찬 때 사초에 실린 '조의제문'이 문제가 되어 김일손 등 많은 사람들이 화를 당했으며, 김종직은 부관참시 되었다. 이 사건은 조선시대 4대 사화의 첫 번째로 사초 문제가 원인이 되었다고 하여 '史禍'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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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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